새해에는 덕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 대한항공 회항 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갑오년 마지막 한 달동안 떠들썩하게 여론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은 30일 조 부사장의 구속으로 사법처리로 넘어갔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새해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 직접적인 행위보다도 그러한 행위가 발생하게 된 사회 문화적 관행과 관례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언론의 관심이 고조될 때마다 잠시 많은 사회적 갈등과 병폐가 새삼 튀어 나오다가 이내 의혹 속에 잠겨가는 양상으로 지속된 의아스러운 사건이다. 이 사건의 흐름을 통해서 우리는 마카다미아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기내의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한단순하고 우발적인 사건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사회적 사법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는지를 의아스럽게 보게 되었다.

 

사건을 이렇게 비화시킨 원인으로는 사실을 의혹으로 버무려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관행, 사회 각 계층 간에 강고하게 굳어진 불신과 종로에서 매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는 격으로 억눌린 감정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보복 심리, 정치적 사회적 문제 처리 능력을 포기하고 사법처리로 대신하려는 정치 부재와 사법처리 만능 현상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사건을 뒤돌아 보면 125일 발생한 단순하고 우발적인 이 사건은 8일 언론의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대한항공측의 사과문 발표와 조부사장의 보직 사퇴로 이어졌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시민단체가 10일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마침내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비화하였다. 이에 검찰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11일 신속하게 대한항공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조 전부사장을 출국 금지시켰다. 반면에 국토부는 16일 행정당국으로서 대한항공을 조사하고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의 행정처분을 결정하고 조 전부사장을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지만 그 조사과정이 문제가 되어 오히려 사무실이 압수수색되고 조사관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건의 추이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법치 정신의 실현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정치력의 실종을 보게 되면서 허탈감을 금할 수가 없다. 새삼스럽게 언론에 오르내리며 관심을 끈 재벌기업의 전근대적인 조직운영 형태와 재벌 3세의 품성, 민관유착의 뿌리깊은 인습 등은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건을 사법적 처리로 넘기지 않으면 안될 근거는 아닐 것이다. 항공안전감독관 17명 중에서 15명이 대한항공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부 감독이 부실하고 기능을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는가? 사무장을 조사하는 자리에 회사 임원이 동석했다고 해서 반드시 부실 조사로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우리 사회의 고쳐야 할 관행이나 인습으로서 의혹을 낳기에는 충분하지만 이러한 의혹으로 사건을 예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가지 의혹을 잘 제기하면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스스로 의심해 보고 반성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모순된 우를 범하면서도 거의 스스럼이 없다.

 

단정적으로 몇가지 오류를 지적하자면 첫째로 조현아씨 개인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먼저 회사차원의 잘못으로 확대,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옳은 태도는 아니다. 조현아씨 개인의 잘못은 그것대로 처리하고. 회사가 조현아씨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 아닌 다음에야 회사까지 싸잡아 비난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이다.

 

둘째로 개인의 잘못도 인격 수양상의 잘못과 법를상의 잘못을 구별해야 한다. 인격상의 잘못은 개인차원의 문제이므로 조현아 개인이 피해자 개인을 상대로 잘못을 사과하면 되는 것이지 사회전체나 국민 전체를 상대로 사과할 일은 아니다. 조현아가 국가를 대표하는 공인적 지위나 위상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왜 그가 국민이나 국가를 상대로 잘못을 빌고 사과를 해야 하는가. 또 법률상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검찰과 법원의 판단과 처벌에 맡길 문제이지 언론과 여론이 나서서 마녀사냥하듯이 인격살인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적인 인격상의 잘못과 법률상의 잘못을 구별할 줄 아는 성숙한 분별력은 우리 사회가 갖추어야 절실한 덕목이다.

셋째로 인격상의 잘못 즉 도의상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것을 나무라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기 스스로를 뒤돌아 보고 비교를 해보는 자세가 절실하다. 과연 자신은 그렇게 자제력이 많고 도의상으로 결점이 조현아씨보다 적은가 하고 비교를 해본다면 아마도 언론이 지금 하듯이 인격살인이나 마녀사냥 같은 짓은 못할 것이다. 얼굴을 못들고 눈물짓는 그런 사진을 신문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싣는 그런 짓은 부끄러운 일임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적인 처리로 떠넘기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모든 분쟁이 사법적 처리를 거쳐야 가라앉기 때문에 사법처리를 마무리 절차라고까지 하는 말까지 생겼다. 개인들 뿐만 아니라 사회 각 계층간의 불신이 강화되고 사법적 처리로 보복하지 않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 풍조의 해결도 사법처리로 넘길 것인가? 참으로 정치 실종의 극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을 보면서 일찍이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금강산 비로봉 밑의 회양을 지나면서 그 감회를 서술한 관동별곡의 한 대목이 새롭게 느껴진다.

회양 네 이름이 마초아 같을시구, 급장유 풍채를 고쳐 아니 볼 것인가

송강은 회양을 지나면서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때 회양 태수를 맡은 급장유를 떠올리고 마침 지명이 같으므로 급장유와 같은 선정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읊은 구절이다.

 

급장유는 직간을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무제는 그의 거침없는 간언 때문에 얼굴빛이 변한 채 조회를 중지시키면서도 급장유의 우직함이 너무 심하구나하면서 급장유의 직간을 들었다고 한다. 급장유가 알자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마침 동월(東越)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무제는 급장유를 시켜 그 정황을 살펴보고 오게 하였다. 그러나 급장유는 월나라까지 가지 않고 오나라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와서 무제에게 보고하기를 월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원래 그들의 습속이므로 천자의 사신을 욕되게 그런 곳까지 보낼 일은 아니옵니다고 하였다. 이 일화처럼 급장유는 천자의 통치 행위야말로 그 권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미쳐야 할 범위가 제한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는 또한 지나치게 세세한 법이 백성들의 발을 묶고 눈치만을 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한나라 고조 유방은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진나라의 세세한 악법을 폐지하고 단순하게 사람을 죽인자는 죽음으로 다스리고 남을 해치거나 도둑질한 자는 그 죄를 묻는다는 약법3장을 내걸어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무제 때에 이르러 법령의 제정과 정비를 통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 무제는 이 일을 장탕에게 맡겼는데 장탕은 평소 법은 다소 가혹해야 범죄자들이 이를 두려워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급암이 황제 앞에서 장탕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는 정경으로서 위로는 선제의 공덕을 선양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사심을 없애지 못하며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일과 감옥을 비게 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소. 그대를 노력하여 공을 이루기보다는 마음대로 법을 고쳐 일을 이루려고 하며, 심지어 고조 황제의 약법마저 혼란케 하니 장차 멸족의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하였으며, 장탕과 논쟁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소송문서 작성하는 자(도필리(刀筆吏))들을 공경의 자리에 앉혀서는 안된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대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대는 천하의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서 두발을 모으고 곁눈질 하게 하고 있다(令天下重足而立, 側目而視矣)”고 지적하였다. 이로부터 법의 세세한 간섭으로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기를 펴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중족이립(重足而立) 측목이시(側目而視)라는 고사가 생겼다.

 

급장유가 우려한 것은 그 사회의 정치적 해결 능력의 부재나 상실일 것이다. 그는 법의 힘으로 국가의 기강을 세우기 보다는 정치력으로써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자 하였다. 백성들이 두발을 모은 채 곁눈질이나 하는 사회는 법으로써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예로부터 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였다. 법을 지나치게 세밀하고, 가혹하게 적용하면 사소한 실수까지 법으로 처리하게 되며, 반대로 법이 솜방망이가 되어서는 사회적 기강이 문란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중용을 지키는 것이 곧 정치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덕을 기반으로 번창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은 법치 이전에 덕치일 것이다.

 

이번 사건도 관례대로 사법적 처리가 곧 마무리 절차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아니 하고 또 언젠가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우려해야 될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연하게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1224일 국회에서 예정된 항공산업 현장 노동 인권 실태좌담회를 취소하였는데 그 취소 이유를 “‘땅콩 회황 사건이 국민들에게 조종사, 승무원 등 항공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심이 특정 개인의 부도덕함과 재벌 3,4세들의 일탈로 흐르다 보니 정작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때문에 제약을 받는 쟁의행위 문제 등은 오히려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습니다.” 라고 밝혔다.

 

뒤늦게 나마 우리 사회의 정치력이 무기력해지고 여론몰이로 빠져들 때 사건 자체가 왜곡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도 저해가 됨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덕의 정치를 회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