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일기의 주인공들을 찾습니다

재개관한 세종시 ‘사랑의 일기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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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당시 충남 연기군 연남초등학교 4학년 고준일 학생의 일기.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1990년 7월 8일. 좋았던 일: 나눠 먹은 것, 오늘의 반성 : 볼펜 안 빌려준 것. 오늘 엄마 말씀을 안 들었다. 이제부터는 심부름도 잘하고 엄마가 시키시면 짜증 부리지 않겠다.”(연기군 연남초등학교 4학년 고준일)
   
   “1990년 7월 14일. 내일 할 일 : 나는 밤 10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나야 한다. 9시, 10시까지 자고 싶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연기군 교동초등학교 4학년 박재원)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사랑의 일기 박물관’에 보관된 일기의 일부다. 24년 전 일기장은 누렇게 변색돼 있다. 표지 디자인이며 서체는 골동품점에서 툭 튀어나온 듯 세월이 묻어났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이 박물관에는 전국 초등학생 120만명의 일기가 고이 보관돼 있다. 그중 3만권은 원본이다. 1990년 ‘일기 쓰는 어린이는 비뚤어지지 않는다’를 모토로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사장 권성·대표 고진광)에서 시작한 ‘사랑의 일기 쓰기’ 범국민운동은 한때 1년에 수십만 명이 응모할 정도로 호응이 대단했으나 2000년대 중반 들어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 지정 문제로 홍역을 앓으면서 한동안 운영이 중단됐다. 그러다 2013년 3월 재개관했다. ‘사랑의 일기 쓰기’가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라는 판단에서 인추협 측이 대대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일기장의 뽀얀 먼지를 걷어내면서 이곳에는 흥미로운 일이 하나둘 터지고 있다. 일기장 주인공의 20여년이 지난 현재 모습이 알려지면서 ‘일기의 효과’가 증명되고 있는 것. 앞서 소개한 일기의 주인공 연남초 고준일군은 세종시 의원이고, 교동초 박재원군은 특허청 사무관이다. 인추협 고진광 대표는 “일기장 주인공의 현재를 추적해 보려 한다. 일기를 꾸준히 써온 아이들이 10년 후, 20년 후 무엇이 돼 있는지를 밝히는 방대한 작업이다. 이 데이터가 쌓이면 일기 쓰기의 힘, 더 나아가 기록의 중요성이 입증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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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준일 학생은 세종시 의원이 됐다. 자신의 24년 전 일기를 들여다보는 고준일 의원.

지난 1월 6일, 24년 전 일기장의 주인공인 고준일 의원과 함께 사랑의 일기 박물관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는 45분 만에 오송역에 닿았지만 오송역에서 일기박물관이 있는 금남면까지 자동차로 40분이 걸렸다. 신축 아파트가 즐비한 ‘첫마을’을 지나고 금강을 지나 닿은 금남면은 세종시 개발지역의 마지막 경계였다. 녹지와 대학연구단지 중간에 폭 파묻힌 일기박물관은 세종시 지도상에 ‘유보지’로 표기돼 있다. 개발 계획 당시 시 측에서 5억원대의 보상금을 제시했으나 박물관 측은 거절했다. “이곳을 스쳐간 아이들의 흔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꿈의 방’ 천장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족편지’ 한 점당 500만원의 가치가 있다”며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했다. 꿈의 방에 전시된 작품은 줄잡아 1000점이었다. 금병산을 이고 있는 사랑의 일기 박물관은 고즈넉했다. 띄엄띄엄 농가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폐가였다. (구)금석초등학교 사랑의 일기 박물관 운동장에 들어서자 ‘사랑이’와 ‘일기’가 뛰쳐나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사랑이와 일기는 박물관을 지키는 개 이름이다.
   
   고준일 의원은 한 달 전쯤 이곳에서 자신의 24년 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곳이 재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등학교 때 ‘사랑의 일기 쓰기’에 내 일기장을 기증한 것 같으니 찾아봐 달라”고 의뢰했고, 박물관 측은 켜켜이 쌓인 일기장 속에서 고 의원의 일기장을 찾아냈다. 타임머신을 타고 24년 전 자신을 만나는 고준일 의원의 표정은 복잡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의 얼굴엔 온갖 표정이 스쳤다. “감회가 새롭다.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있을지 몰랐다.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은 느낌이다.” 그의 일기장에는 빨래하기, 빨래 개기, 청소하기, 설거지하기 등의 내용이 많았다. 바쁜 엄마를 도와 형과 함께 틈나는 대로 집안일을 실천한 ‘착한 초등학생’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고, 지금도 메모 습관이 몸에 배 있다고 했다. “기록은 나의 역사다. 중요한 일이나 스치는 생각들을 간단히 메모 형식으로 기록하는데, 직장에서나 대인관계 시 도움이 된다. 일기와 기록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박물관 재개관 이후 고 의원처럼 우연찮게 자신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감격하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사랑의 일기 박물관에는 진귀한 자료가 많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남긴 옥중편지 원본을 보관 중이고, 1990년부터 이어온 ‘사랑의 일기 쓰기’를 호응해준 유명인사들의 흔적을 전시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재계에 진출하기 전, 아들과 함께 ‘사랑의 일기 연수원’ 1박2일 캠프를 다녀간 자료사진도 있다. 박물관 측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저 평범한 학부모인 줄 알았다. 나중에 자료사진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며 “대걸레를 먼저 드는 등 궂은일에 앞장서 기억에 남았다”고 회상했다. 고(故) 미당 서정주 선생은 ‘사랑의 일기 쓰기’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어린이날마다 어린이들에게 직접 사랑의 일기장을 나눠 주었고, 1995년부터는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사랑의 일기’ 측에 ‘고백’이라는 글도 기고했다. 내용은 이렇다.
   
   ‘사람은 누구나 일기를 쓰고 있는 때의 마음으로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그 마음을 바로 해 거짓 없는 사실을 일기로 쓰고 있을 때만큼은 진실하고 정직하니 말씀이다. (중략) 그런데 나는 국민학교 1, 2학년 때에는 그 일기라는 걸 아직 쓰지 않고 지내서 그랬던지, 꼭 고백했어야 할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도 우물쭈물하다가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던 일이 있어, 그 일을 아래에 적어 여러분께….’
   
   미당의 가슴에 60여년간 돌덩어리처럼 남아있던 어린 시절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부끄럽게 했을까. 바로 형님의 만년필을 망가뜨리고도 사실대로 고백하지 못한 것이었다. 말년이 되어서야 털어놓으면서 진즉 일기를 썼다면 일기장에 고백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두 곳이다. ‘꿈의 방’과 ‘일기전시실’. ‘꿈의 방’에는 이곳에서 가족 연수를 한 이들이 남긴 ‘가족 편지’들이 벽과 천장을 빼곡하게 메웠고, ‘일기전시실’에는 지금은 30대 중반이 된 이들의 20여년 전 일기장 원본과 김구, 연산군, 소현세자, 박지원 등 역사 속 위인들의 일기장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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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초등학생들의 가족 편지를 전시한 ‘꿈의 방’. 1000여점의 편지들이 천장까지 빼곡하다. 02 ‘꿈의 방’에 전시된 편지. 03 ‘일기전시실’에 전시된 일기장 원본들. 04 ‘일기전시실’에는 김구, 소현세자, 박지원, 김대중 대통령 등 역사적 인물의 일기와 편지도 전시돼 있다. 박물관을 찾은 대전 글꽃초등학교 박소영·이가은·손민지양(왼쪽부터) . 05 사랑의 일기 박물관은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박물관을 지키는 개 ‘사랑이’와 ‘일기’.


   일기박물관 재개관의 일등공신은 동네주민들과 일기장의 주인공들이다. 세종시 선정 문제 시 정치적으로 얽히면서 운영이 중단된 이곳은 몇 년 새 흉가처럼 변해버렸다. 도둑이 들어 창문과 문틀, 각종 서류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사라진 서류 중에는 일기장 원본도 포함된다. 이곳이 새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손길이 필요했는데, ‘사랑의 일기 쓰기’에 일기장을 기증한 대학생 1680여명이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이들은 두 달간의 자원봉사 동안 청소, 페인트칠, 폐품을 활용한 인테리어 등을 했다. 학생들은 일손이 부족한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복숭아 따기, 밭일 등을 도왔고, 이에 감동받은 동네주민들은 이불가지, 선풍기 등을 걷어 박물관에 기증했다.
   
   일기박물관은 단순히 일기를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인성 함양을 위해 ‘사랑의 일기 캠프’도 연다. 재개관 이후 약 10개월간 대전 글꽃초등학교, 변동초등학교, 서산여중, 자동차동호회 가족, 불교대학 학생 등 1000여명이 다녀갔다. 캠프 과정은 철저히 ‘인성교육’에 맞춰져 있다. 우선 이곳에 들어오면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된다. 텔레비전 한 대 없고, 컴퓨터도 없다. 자연 속에 폭 파묻혀 친구와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것에 집중한다. 밤하늘 별 헤기, 개구리 소리 듣기, 텃밭에 감자, 토마토, 땅콩 등 작물 재배하기, 캠프파이어, 가마솥에 밥짓고 인절미 만들어 동네 어르신께 대접하기, 팀 플레이 통해 협동심 배양하기, 역할극 통해 자신과 부모, 친구에 대한 소중함 느끼기 등이 캠프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인성교육을 마친 아이들은 이런 후기를 남겼다. “여기 캠프 온 게 내 삶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 “TV, 컴퓨터 없는 연수원이 집보다 좋다” “같은 반 친구였지만 처음으로 소통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보는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일기도 사랑의 일기 박물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산여중 교사는 연수를 다녀간 지 6개월 만에 이런 평가서를 보내왔다. “보육원 생활을 하는 소희(가명)는 반 친구보다 보육원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급 활동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에 대한 고민도 비전도 없는 무기력한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캠프에 다녀온 후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심성놀이’를 통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곁을 내주기 시작했고, 같은 반 친구들 역시 소희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소희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사랑의 일기 박물관에는 마침 대전 글꽃초등학교 윤석희 교장과 6학년 학생들이 방문했다. 세 학생은 올해 6월 이곳에서 캠프를 했고, 두 명은 이곳에 자신의 일기장을 기증했다고 했다. 세 학생은 이곳을 과거이자 미래로 여겼다. 손민지양은 “한밤중 운동장에 돗자리 펴고 누웠는데, 태어나 그렇게 선명한 별은 처음 봤다”며 별 이야기를 꺼냈고, 박소영양은 “텃밭에 심은 땅콩이 궁금하다”고 했다. 이가은양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찾고 싶다. 그때 내 일기장을 다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윤석희 교장은 교사 생활 내내 일기 쓰기를 강조했다. “일기 쓰기의 힘은 엄청나다. 학교폭력 예방과 언어순화에 더없이 좋다. 평교사 시절 나는 늘 ‘그 반 아이들은 좋은 아이들만 배정됐다’는 말을 들었다. 일기의 힘 같다. 일기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는 폭력적이 되지 않는다. 글을 통해 고백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일기 쓰기는 차원 높은 인성 교육이다.”
   
   사랑의 일기 박물관 외관은 소박하다. 그러나 박물관 내부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24년간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고백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인추협 측의 목표는 거창하다. 일기박물관을 중심으로 이 일대를 대한민국 인성교육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90100021&ctcd=C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