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120만 고사리' 희망 …세종 사랑의일기 연수원 강제철거

2017-02-27기사 편집 2017-02-27 17:41:27

  사진1.jpg  

고진광 대표가 이날 복원작업을 벌인 일기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이호창 기자

"잃어 버린 우리의 일기장을 찾아주세요."

27일 오후 2시, 세종시 금남면 '세종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하 연수원)'에 충남대 학생 30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연수원에서 보관해온 사랑의 일기와 역사적 자료 등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복원작업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땅속에서 일기장 하나하나를 꺼낼 때 마다 붉어진 눈시울을 닦았다.

작업에 참석한 이모(충남대 기계공학과 4년) 양은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강제 수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친구들과 함께 각종 기록물을 찾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이 양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학생들도 안타까워하며 복원 작업에 열을 올렸다.

현장에는 할머니와 함께 복원작업을 벌이는 초등학생도 눈에 띄었다.

조치원에 사는 윤가빈(9)·창빈(7) 형제는 연수원을 축구하는 곳, 맘껏 뛰놀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 건설로 인해 연수원이 모두 흙으로 뒤덮여 사라졌다. 이날 이 형제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제치며 복원 작업에 힘을 보탰다.

이 곳은 세종시 4-2생활권 주간선도로(남세종로) 건설로 인해 지난해 9월 28일 새벽 종적을 감췄다. 법원의 강제집행에 따라 이날 새벽 용역 인원 120여 명, 트럭 116대, 포크레인 등 각종 중장비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법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소중한 기록물들을 어떻게 한순간에 이런식으로 땅에 묻을 수 있는지 정말 하늘이 무너져 버린 것 같다"며 고진광 연수원 대표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증언했다.

강제 철거전 연수원에는 전국 120만 명이 써온 어린이 일기장을 비롯해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해 세종시민들이 사용한 투쟁 기록물 1만여 점 등 수만 건의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고 대표는 "새벽에 용역이 와 모든 것을 싹쓸이 했다. 아무런 힘을 쓸 수 조차 없었다"며 "오늘이 소중한 자료를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까지 고 대표는 먼지가 연신 풍기는 건설현장의 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기록물을 지켜왔다. 이렇게 생활한지도 벌써 154일이다. 컨테이너에는 전기도 끊어져 그동안 촛불하나로 버텼다는 것이 고 대표의 설명이다.

고 대표는 "또 언제 갑자기 쳐들어와 흙을 덮어버릴 지 모른다"며 "최대한 자료를 복원하기 위해 컨테이너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편 연수원은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2003년에 개원한 곳으로 "반성하는 어린이는 삐뚤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청소년 인성교육, 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이호창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사진2.jpg  

충남대 한 학생이 땅속에 묻힌 일기장을 꺼내기 위해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이호창 기자

  사진3.jpg  

고진광 대표가 이날 복원작업을 벌인 일기장을 학생들에게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이호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