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매장당한 '120만명 사랑의 일기'[정대용 인생기록연구소 소장]
논객닷컴 | 승인 2019.03.18 08:44

[논객 기고]

 

정대용 소장

일기는 나의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기를 쓰는 동안은 진실하고 정직하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의 부모로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인생 선·후배로서, 사람들과 하늘과 땅에 대해서도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세종시에는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있다. (사)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사장 고진광)에서 운영해 온 사랑의 일기 연수원(세종특별시 금남면 남세종로 98)은 120만명 초·중·고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쓰여 있는 일기장을 보관해 온 비영리법인이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에서는 세계 최초 ‘일기 박물관’ 건립과 ‘사랑의 일기’를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 9월 28일 새벽,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랑의 일기 연수원을 기습적으로 점령한 후 강제철거를 집행했다. 강제집행에 동원된 용역요원만 무려 150여명. 포클레인 등 중장비와 대형 버스를 비롯한 화물차 80여 대가 동원됐다. 청소년들의 소중한 일기장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취급되어, 닥치는 대로 트럭에 적재돼 집행관이 관리하는 창고로 실려갔다. 창고로 미처 실려가지 못한 수십만권의 일기장은 중장비에 의해 땅속에 생매장됐다. 강제집행을 한다면 물품 목록과 수량은 반드시 파악되어야 한다. 뭐가 그리 급했던지 이러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범죄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은 2003년 금석초등학교가 폐교될 때 인성교육전문도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유치되었다. 금석초등학교는 최초 건립 당시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헌신이 없었다면 세워질 수 없었다. 1950년대 당시 충청남도 교육청은 학교를 세울 장소에 땅이 부족했다. 이때 이 마을에 사시던 심수동 선생이 자신의 땅을 기꺼이 학교 부지로 사용하도록 기부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보리쌀 한말 두말 자발적으로 기부했고, 또 학교 건물이 세워질 때는 직접 벽돌을 쌓아 올려 금석초등학교를 건립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은 이러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금석초등학교 건물과 시설물, 운동장 등 모든 것을 온전하게 보존 관리하였다. 학교 건물 자체가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었다.

강제집행이 된 지 900일이 지났다. 세종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이곳 현장에서 다량의 청소년 일기장과 기록물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폐기물과 함께 생매장됐던 꿈과 희망, 가족사랑 등이 담겨있는 기록물들이 세상의 빛을 다시 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모른 척 무참히 짓밟는다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세종대왕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세종시’에 걸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과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난중일기』 등을 보유한 기록문화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자랑스러운 나라다.

청소년들의 ‘사랑의 일기’는 충분히 보존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고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120만명의 청소년 일기장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세종시는 서로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떠넘길 일이 아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과 같은 제2의 참담한 사건이 일어나선 안된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문화유산은 길이 보존돼야 한다. 후손들에게 기록문화유산을 말살하는 부끄러운 짓을 더 이상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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