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인 철학의 빈곤, 이대로 방치해선 안돼”[인터뷰]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
문용필 기자  |  eugene97@the-pr.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9.05  11:17:3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사진:성혜련 기자)

[더피알=문용필 기자] 불안한 세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대형 사건사고가 뉴스를 뒤덮는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윤일병 사망사건 등 군 관련 사건도 잇따라 터져 나왔다. 사망 이전에도 윤 일병에 대해 차마 말로 다 못할 집단적인 가혹행위와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지난 1일에는 한 여고생이 울산에서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긴 채 투신자살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안전불감증,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려운 사건사고들이 계속되면서 이를 ‘인간성’과 연결 지어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나고 있다. 무한 경쟁이 어느덧 당연시 돼 버린 우리 사회가점점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인간성 회복에 대한 절실함이 강조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더피알>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1세대이자 20여년간 인간성 회복운동을 펼치고 있는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를 만나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인간성 회복을통해 그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고 대표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얼마 전 인추협 사무실을 찾아온 중학생 4명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에게 고 대표는 “요즘 우리 사회가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4명 모두 “무섭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고 대표는 이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던 고 대표의 얼굴에 어느새 수심이 가득해졌다.

그는 최근 제기되는 갈등과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특정 개인보다 사회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지도층을 향해서는 솔선수범을 당부하면서 “자신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또한 계층 간 이해관계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소통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울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개인에게 책임지우고 안도하는 사회풍토 문제”

최근 잇따른 사건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인간성 회복 측면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적인 안위나 사적 이득을 추구하는 데 너무 익숙합니다.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몇몇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안도하는 사회 풍토도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인간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사회의식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성회복을 위해 개인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올해 들어 군 관련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28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망사건의 경우 인간의 잔인성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사건이라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늘 전투준비를 하며 군기를 잡는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유복한 청소년기를 보낸 요즘 사람들은 이런 군기를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선임들 역시 경험이 풍부하다고 할 수 없는 비슷한 처지에서 조직 기강을 잡으려면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성장과정에서 성적만 중시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인간존중의 개념이 길러지지 않았다면 폭력 대상자가 받을 고통에대한 개념 역시 부재하다고 봅니다. 학교 폭력이든 군 폭력이든 조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개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돼서는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폭력과 잔인성을 갖고 있을지라도 사회적 분위기와 풍토가 조장하지 않으면 결코 표출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청소년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문제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예절을 통해 전수, 습득되는데 학생들의 일상생활에도 이같은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절을 통해 예의염치를 자연스럽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교사와 학부모는 (이들을) 학업의 경쟁 속에 내몰면서 공부경쟁의 괴로움을 감안하면 생활 속 예절을 배우는 것은 불가피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이를 과감하게 털어버려야 합니다. 왕따 사건은 이같은 철학의 빈곤에서 초래된 필연적인일이라고 보는데요. 더 이상 망국적인 철학의 빈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사회적 이슈로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도 있었는데요. 이를 두고 사회지도층 인사가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났을 때 진실은 말보다는 행동에 가까이 있지 않겠습니까? 특히 사회지도층에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는 과연 이 사람이 우리사회를 지도할만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죠.

   
▲ 지난 4월 발생한 윤일병 사망 사건 관련 브리핑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사진을 공개하는 모습(위), 지난 3월 경북 구미 아들 살해사건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피의자 ⓒ뉴시스

정부와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국민의 의견과 뜻을 존중하고 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소통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갖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진실을 숨기고자 할 때는 사사로운 경우에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사회 여러 계층 간 소통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계층 간 이해관계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공통적인 이해의 폭도 점점 좁아지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각자 조금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 하고, 한 치를 양보하면 열 배 이상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소통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각 계층이 미래를 공유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으니 현재 다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고 대표께서 생각하시는 공감과 소통이란 어떤 것입니까.

공감과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놓고서도 자신의 말이나 주장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결국)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존재감이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내세우는 데에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들어 줄 수 있다면 더욱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자취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요.

“교황 신드롬 이후 공허함은 더욱 커질 것”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상당한 사회적 신드롬을 몰고 왔는데요. 특히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낮은 리더십이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황은 우리사회에 본받아야 할 많은 행동과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통례적으로 봤을 때 우리사회가 그 형식만 배울 뿐 내용과 본질을 간과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교황의 말과 행동에 담긴 본질을 헤아려 보고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려되는 바가 또 하나 있는데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이 존재하는 우리사회 안에서 귀감이 되거나 존경할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고 교황처럼 상징화된 분에게 마음을 뺏기고 나면 이후의 공허함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지도층에 대한 실망감도 커질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어떤 리더십을 갖춰야 할까요.

마음을 내놓고 진짜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작은 차, 전철도 타보고 시장가서 소주도 좀 먹어봐야 합니다. 지도층이라고 해서 과거 어려운 시절이 없었겠어요? 그러한 과거를 감추지 말고 (약자들의)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지도층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 우리사회의 지나친 경쟁구도, 그리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경향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힘의 균형에 있어서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 필요성을 먼저 느껴야 저절로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이죠. 전체적으로 우리사회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졌어요. 경쟁구도가 좋아서 쫓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따라서 국가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제도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두고 개인의 인간성이나 도덕심에 호소해 이를 극복하려는 것은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사진:성혜련 기자)

지난 1989년부터 인간성 회복운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성 회복운동이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죠.

급격한 사회경제 발전 속에서 잃어버린 사회 공동선을 되찾자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인추협은) 남북 간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남북 혈맥 잇기 운동’과 살신성인 명예의 전당 건립사업, ‘사랑의 일기장’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하는 사업 등을 펼쳐왔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생활 속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운동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사회의 공동체성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개개인의 인간성도 공동체 속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성 회복운동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 패륜적인 사건이 많다는 생각에 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맥이 풀리죠. (인간성 회복 운동을) 하면 할수록 사회가 그렇게 되어 가니까 힘이 듭니다. 20여년 간 줄기차게 이 운동을 해왔는데도 계속 이렇습니다.
우리사회에서는 직업윤리를 제대로 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세월호 선장에게 직업윤리가 있었다면 저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만은 꼭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보람된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1990년 시작된) 사랑의 일기 운동이 그렇습니다. 한 지역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운동이 6~7년 만에 500만명까지 확대됐죠. 그 아이들이 지금 잘 성장했습니다. 해외까지 번져서 1만5000명이 참석한 사랑의 일기 큰잔치도 여는 등 국제적인 운동이 됐습니다.

우리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본질로 돌아가서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제는 우리사회에 영웅을 만들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는 영웅들이 많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던 어르신들이죠. 그런데 전쟁에 참여했지만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했고 (경제발전을 위해) 산업전선에서도 뛰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들 호국영웅과 청소년들을 이어주는 사업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형성돼야 합니다. 

고진광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함께 시민사회운동 1세대로 꼽히며 1989년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를 설립했다. 공익법인 사랑의일기재단,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을 설립하기도 했다. 한국민간자원구조단 초대단장, 교육부 교육안정화대책위원회 위원,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근공동대표,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계층분과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추협 대표이사와 6.25참전유공자 지원센터장,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을 맡고있다. 저서로는 올해 출간된‘고진광의 행복한 세상만들기’가 있다.
 
 


< 저작권자 ? 더피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