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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273호] 2013.09.09

    78세 6·25 참전유공자와 15세 중학생의 편지 우정ic_line_01.gif

 

내가 너만 할 때 M1 소총 메고 싸웠지… 잊지 않고 기억해줘 고맙다”
“6·25는 영화 속 이야기라 생각… 목숨 걸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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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이 정성 들여 보내준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오. 이제는 80 넘은 늙은이지요. 몸은 마음대로 듣지 않으나 마음은 그래도 옛 생각이 새롭고 특히 6·25 전쟁이라면 그때의 고생을 어찌 다 종이 위에 쓸 수가 있겠소.”
   
   “이렇게 느지막에 학생에게 편지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참으로 고맙구나. 세월은 흘러 어느덧 군대 생활한 지도 63년이 되었구나.”
   
   6·25 참전 유공자 할아버지의 필체는 떨렸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10대들의 위문편지에 까마득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말로 다 표현 못할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행간에 꿈틀거렸다. 60여년 전의 그 처절한 상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 나이 팔팔니오니(88세이니)… 정신니오락가락(정신이 오락가락)… 금방드러도이저버리니(금방 들어도 잊어버리니)”라고 쓴 유공자도 6·25에 대한 기억은 생생했다. “군봉무(군 복무)오십사개월20일만에제대햇슴(54개월 20일 만에 제대했음). 내사라온거선지의관잘만나서(전쟁에서 내가 살아남은 것은 지휘관 잘 만나서)”라고 또렷이 기억해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군번도 없이 총을 들고 중공군과 맞서 싸운 전쟁담을 세 쪽에 걸쳐 또박또박 기록한 유공자도 있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각각이고, 편지지와 양식도 제각각인 17통의 편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60여년 전의 전쟁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고, 6·25 참전유공자로서 자부심이 대단했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이 넘쳤다. 또 하나, 편지 말미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라는 당부가 있었다.
   
   지난 6월 2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중학교 전교생은 6·25 참전유공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회장 고진광)가 추진한 ‘6·25 참전유공자와 함께하는 세대공감 범국민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인추협은 3년 전부터 ‘6·25 참전유공자 돌봄사업’을 하고 있다. 그간 10대 청소년과 80대 유공자 어르신 자매결연을 추진해 ‘우리 지역 유공자 어르신 찾아 뵙기’를 실행해 왔다. 서울 서초구 언남중학교와 강북구 화계중학교 전교생이 10인 1조를 이루어 서울시내 6·25 참전유공자 댁을 방문해 말벗도 해 드리고, 청소도 해 드리고, 안마도 해 드리는 봉사활동이다. 참전유공자들에게 편지쓰기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편지를 쓰기 전, 인추협 측은 학교 측과 상의해 6·25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관련자료를 학생들에게 먼저 소개했다. 14~16세의 중학생에게 60여년 전의 전쟁은, 살아남은 누군가의 실화가 아니라 까마득한 역사 속 사건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우근 학도병 유골 발견 당시에 함께 발견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와 관련된 6·25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시청하고,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 ‘벌레의 시간’에 해당하는 부분의 내레이션을 들은 후 인추협 고진광 대표, 6·25참전유공자회 김기제 서울시지부장의 짧은 특강도 들었다.
   
   화계중학교 전교생 760여명이 쓴 편지는 서울시에 살고 있는 6·25 참전유공자들에게 전달됐고 그중 17통의 답장이 왔다. 답장을 쓰고 싶지만 수전증 등의 이유로 못 쓰는 유공자들은 인추협으로 감사의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는 30여통에 달했다고 한다. “내 평생 참전유공자로서 편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라며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보낸 편지의 일부는 그새 ‘수신자 사망’의 이유로 돌아왔다.
   
   참전유공자들이 보낸 답장은 먹먹했다. 삐뚤빼뚤 떨리는 육필에는 삶의 온갖 애환이 묻어났다.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고 듣던 6·25와 차원이 달랐다.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환으로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80대 참전유공자들이 들려주는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이야기였다. 하나같이 절절한 사연 속에 유독 한 사연이 눈에 띄었다. “내가 너만 할 때 엠완(m1)총을 메고 인민군과 중공군을 막아내느라고 고생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는 편지 뒤에는 한 장의 명함이 동봉돼 있었다. “내가 유공자라는 것을 어디에서 알았는지 몹시 궁금하다”며 꼭 연락하라는 당부와 함께 연락처를 남긴 것. 보낸 이는 청량초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한 이상기씨였다. 답장 쓴 날은 2013일 7월 27일. 정전 60주년 기념일이었다. 주간조선은 이상기 할아버지와 이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낸 화계중학교 2학년 1반 강지훈군과의 실제 만남을 주선했다.
   
   지난 9월 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이상기 할아버지 댁으로 강지훈군 일행이 찾아갔다. 이날 자리에는 강지훈군과 강군의 반 친구 최승오·김재현군, 북한학에 관심이 많은 3학년 김의진양, 화계중학교 박의동 교감, 인추협 조영준 사무국장이 동석했다. 이상기 할아버지댁 현관문 한가운데에는 ‘6·25 참전유공자의 집’이라는 표식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참전유공자회 모자를 쓰고 참전유공자회 조끼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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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참전유공자 이상기씨(가운데)와 화계중학교 학생들. 왼쪽부터 김의진양, 편지의 주인공 강지환군, 강군의 반 친구 김재현군과 최승오군. 강북구 화계중학교 전교생은 참전유공자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중 17통의 답장이 왔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이상기 할아버지는 강지훈 학생을 보고 “실제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정말 감격스럽다”며 손을 꼭 잡았다. 그는 퇴임 후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서울시립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래 강사를 초청해 노래교실을 열고, 한국노인인권센터의 옴부즈맨으로 활약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노인 인권 강의를 한다. 서울 동대문구 국가유공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인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참전유공자들을 보살피기도 한다.
   
   이상기 할아버지는 팔팔했다. 그는 “내가 78세인데, 참전유공자들 중에 제일 어려”라며 웃었다. 그가 참전한 건 강릉사범학교에 다니던 15세. 이날 모인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 나이다. 이상기 할아버지는 참전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내 고향은 강원도 평창인데, 1951년 1월에 피란 가라는 소개령이 내려졌어. 마을 주민 전부 대화와 영월을 거쳐서 녹전리로 갔지. 그때 군인들이 나타나서 이제 피란 갈 필요가 없다고 해. 우리가 반격하겠다고. 연대장님이 녹전초등학교에서 연설한다고 한 가정에서 한 명씩 들으러 오래. 우리 아버지는 노무사로 차출돼 간 상태였지. 그래서 내가 우리 집 대표로 나갔는데, 나가다가 길에서 붙잡혔어. 학도병으로 끌려간 거지. 가족들한테 인사도 못하고 그 길로 끌려갔어. 일주일간 훈련을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지. 평창군 진부면 일대를 누비는데 중공군이 거기까지 쳐들어왔어. 수세에 밀려 도망가다가 미군이 들어와서 맞섰지. 이게 속사리전투야.”
   
   이상기 할아버지는 군번도 없이 6·25에 참전해 6개월을 지냈고, 이후 정식으로 군에 입대해 2년9개월 동안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2년9개월 군생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이상하게도 참전 6개월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해”라고 말했다. 그는 강지훈군 외 두 명에게 “내가 꼭 학생들만 할 때 참전했어요. 키는 더 작았지. M1총을 어깨에 멨는데, 어찌나 무겁고 길던지 산에 올라갈 때에는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에는 개머리판이 자꾸 돌부리에 닿아 애를 먹었어”라며 총을 어깨에 멘 시늉을 해보였다. 참전 6개월 내내 신발을 한 번도 못 벗었고, 나이가 가장 어린 이유로 잠자리 순번에서 밀려 마굿간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태백산의 1월은 유난히 추웠다고 했다. 발바닥에 얼음이 박힌 채로 걷기도 했다고 했다.
   
   듣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3학년 김의진양은 “편지 쓰기 전까지만 해도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꾸준히 만나고 계시는지 몰랐다. 6·25를 전쟁영화 속 상황으로만 생각했다. 내 또래 학생들이 참전했다니 놀랍다. ‘내 옆의 남자친구가 전쟁터에 나갔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보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며 얼마 전 참전유공자 댁을 방문한 일화를 들려줬다. “참전유공자 할아버지가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계셨다. 교회 건물 한 칸을 빌려서 방으로 쓰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싸우셨던 분들이 너무 열악하게 살고 계셔서 충격을 받았다.”
   
   편지의 주인공 강지훈군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유공자분들이 잘 사시는 줄 알았다. 접해본 적도 없고 만나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전에는 전쟁에 대해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6·25 관련 동영상을 보고 참전유공자 할아버지들에게 편지도 쓰고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신기하다. 오래전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분들의 실화를 들으니 6·25에 대해 제대로 알겠다.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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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학생들이 참전유공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는 학생도 많았고 ‘일본군과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1948년에 일어난 6·25전쟁’ ‘6개국이 서로 싸운 전쟁’이라는 문구도 있었다고 한다. 세대 간 갈등은 공유 가능한 경험치의 부족에서 온다. 전쟁 세대와 모바일 세대의 성장 환경은 천양지차다. 1946년생인 만화가 이원복 교수가 언젠가 “나는 짚신에서 발리 구두까지 다 신어본 사람”이라고 한 말은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는 건 아이들의 인성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노인 세대의 경험과 가치관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경우가 많다. 참전유공자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6·25 참전유공자 편지 쓰기를 통해 유공자 할아버지들을 다시 보게 됐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주신 할아버지들께 감사드린다. 존경심이 생겼다”는 말을 했다.
   
   최승오군은 다른 차원의 효과가 나타났다. 전쟁게임을 안 하게 됐다는 것. 최군의 말이다. “원래 전쟁영화나 전쟁게임, 총 쏘고 싸우는 게임을 좋아했다. 흥미와 재밋거리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참전유공자 할아버지들을 만나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총 쏘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또 “예전에는 애국심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애국심이 생겼다”라는 말도 했다.
   
   김재현군의 할아버지는 6·25 참전유공자다. 김군은 “할아버지가 가끔 6·25 경험담을 들려주시는데 전쟁영화처럼 재미있게 해 주셨다. 그래서 6·25를 전쟁영화처럼 생각했다. 또 할아버지가 별 어려움 없이 잘살고 계셔서 다른 참전유공자분들도 잘 먹고 잘사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6·25 참전유공자는 노령연금에 추가로 보훈수당 15만원을 받는다. 유공자회비 3만원을 내면 12만원을 받는다. 이상기 할아버지는 “국가가 어려우니 이 정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유공자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 전쟁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돈보다 존중하는 마음이 더 필요하다”며 얼마 전에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밤 늦게 전철에 앉아 있는데 술 취한 40대가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참전유공자 모자를 쓰고 조끼를 입은 그를 보고 딴죽을 건 것. 이 할아버지는 40대가 한 말은 구체적으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재차 물어도 “망신 당했다는 표현이 맞아요.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부류들이 있으니 이 나라가 우왕좌왕하는 겁니다”라고만 말했다.
   
   동석한 화계중학교 박의동 교감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위급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겠는가”라며 고대 로마가 칸나전투 당시 포로로 잡혀간 8000명을 20년이 지난 후에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일화를 들려줬다.
   
   이상기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전선야곡’이었다. “소리 없이 나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노래를 부르던 이 할아버지는 “그때 전사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라며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2013년 현재 생존 중인 6·25 참전유공자는 17만6000여명. 매년 1만5000여명의 유공자가 노환 등의 이유로 세상을 뜬다. 인추협 측은 “시간이 많지 않다. 80대 참전유공자와 10대 학생들의 1:1 자매결연을 전국 단위로 확대해 돌아가시기 전에 한두 번만이라도 서로 만나는 자리를 꼭 마련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endmark.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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