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 인추협 명예이사장(전 헌법재판관) '청강 근사록' 출간

박상진 기자 | 입력 : 2020/10/22 [10:25]

▲ [신간] 聽江 近思錄(청강 근사록) 권성 지음, 528쪽, 출판 코벤트 ISBN979-11-970028-4-7 [03150]  © 인추협 제공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대표 고진광, 이하 인추협)는 21일 명예이사장인 권성 전 헌법재판관이 청강 근사록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직을 마친 뒤, 그가 과거에 쓴 논어와 노자의 해설서를 틈틈이 다시 읽어 세상에 내놓은 책으로 고전을 읽으며 느낀 소회를 되짚고 코로나 사태를 맞은 현대인에게 그가 들려주는 동양 고전 해설 이야기이다.

 

안 것 같기도 한데 실은 그 앎이 너무 희미해서 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태인 깨달음이 있다. 나중에 이르러 홀연 그 앎이 제대로 된 것이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을 ‘微覺의 晩覺(미각의 만각)’ 즉, ‘희미한 깨달음의 뒤늦은 깨달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부르면 깨달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형식이 되어 마치 같은 말을 반복하여 눈길을 끌려고 하는 말장난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뜻은 그보다는 훨씬 진지하다. - 깨달음의 뒤늦은 깨달음 중

 

권력이 선거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교체되고, 피의 숙청이 뒤따르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功成不居(공성불거)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시대인가. 자유민주주의는 功成身退(공성신퇴)를 가능하게 하는 唯一無二(유일무이)한 길이다. - 노자(16) 공성신퇴 중

 

저자 권성은 변호사로서 호는 청강이다. 충청남도 세종시 전동면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 8회, 헌법재판소 재판관,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인추협 청강학당 훈장이다.

 

신간 <청강 근사록>은 청강수운 4권으로 논어, 노자, 한비자, 사마타호흡법을 소개하고 있다. 작금의 현대인은 고전으로의 여행이 꼭 필요하다. 선인이 간 길을 따라가 보며 시대상을 생생히 그려내면서 인간의 열망과 욕구를 농밀하게 담아냈다.

 

문의 : 인추협 운영위원장 박현식(010-2014-8735) phs5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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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 인추협 명예이사장(전 헌법재판관)  © 고진광 인추협 이사장 페이스북

 

<책 내용 일부 소개>

 

page 27

“공자의 가르침 덕분에 정직이라는 도덕률은 이미 사람들의 상식(常識)이 된지 오래되었고 그런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권력자들의 행태에 온 국민이 저절로 분노를 일으켰다. 그러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고 따라서 유교가 단체 차원에서 더 말을 붙일 것이 없게 되었구나. 2,00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밴 정직이라는 상식, 그 상식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갑작스런 권력에 대한 당연한 분노의 표출, 여기에 대하여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page 28

유교(儒敎)의 예(禮)는 더 이상 정치의 틀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유가(儒家) 단체에서 예(禮)에 대하여, 그리고 예(禮)의 기본인 정직(正直)에  대하여, 정치의 장(場)을 상대로 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침묵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예(禮)가 죽었다고는 나는 결코 말하지 않겠다. 예(禮)는 결코 죽지 않는다. 비록 유교(儒敎)단체가 침묵한다고 하더라도 예(禮)는 죽지 않는다. 예(禮)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남을 것이고 살아있을 것이다. 예(禮)가 그 내면(內面)에 정직(正直)이라는 불변(不變)의 진리(眞理)를 담을 수 있는 한. 禮가 살아 숨쉬는 선진국들을 보라.

 

page 86

이것은 앞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국민과 백성을 위한 법이 아니다. 권력자의 독재를 위한 법이다. 비록 그 효과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것은 군주의 부국강병이지 국민을 위한, 국가를 위한. 부국강병이 아니다.

또한 한비의 법은 신하보다 훨씬 더 똑똑한 군주가 아니면 제대로 실행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의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같은 제도적 시스템의 보장이 없으면 한비의 법은 대를 이어 실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비자의 교설에는 권력의 본질과 인심의 기미(機微)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는 우화(寓話)나 이야기들이 매우 많다.

 

page 198

순박한 우민(愚民)! 참으로 태평성대의 백성답다.

오늘날의 여러 민주주의 국가를 보면 민지난치(民之難治) 이기지다(以其智多) 라는 老子의 말은 그대로 맞다. 국민 계몽을 지향하는 대중교육과 이곳 저곳 가리지 않는 언론의 비판으로 국민들이 날로 영악해지는 이 시대에 위정자들은 국민들을 거의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위정자들은 老子의 우민화(愚民化)를 그리워 할만도 하다. 아마 그래서 철(鐵)의 장막(帳幕)이나 죽(竹)의 장막, 또는 언론의 장악이나 통제 등을 생각해냈는지 모른다. 언론의 장악이나 통제가 지나간 시대의 유물(遺物)만은 아님을 요즈음 알게 된다.

 

page 247

『대저 어린아이가 서로 장난치며 놀 적에 흙을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 한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집에 돌아가 밥먹는 이유는, 흙밥과 진흙국을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저 오랜 옛날의 전설(↔原始 공산주의)과 기리는 말(↔맑스레닌주의)을 외는 것은 (멋으로 하는 사회주의자들처럼) 말뿐으로 정성이 담기지 않았으며 선왕(先王↔ 맑스 엥겔스)의 인의(仁義↔ 공산주의)를 말하더라도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이 또한 놀이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통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古代의) 인의(仁義)를 우러름으로써 나라가 약해지고 어지럽게 된 것은 삼진(三晉; 春秋 五霸의 하나인 諸侯國 晉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대신한 趙, 魏, 韓의 세 나라)이다. 仁義를 우러르지 않아서 오히려 다스려지고 강해진 것은 진(秦)이다.』(한비자 외저설 좌상 570p.)

 * 어린아이도 구별할 줄 아는 놀이와 실제를 일부 국민들이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결말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2020. 4. 9.)

 

page 269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민의 신뢰 이렇게 세 가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논어를 보면 공자의 견해가 바로 그러한 듯하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부득이 어느 것 한 가지를 먼저 포기하여야 한다면 먼저 군사력을 버리고, 다시 한 가지를 더 포기하여야 한다면 이 때에는 경제력을 우선 버려야 한다고 공자는 말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마치 공자가 말한 순서를 그대로 지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똑 같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진의는 무엇일까?

食, 兵, 信은 요즘 말로는 富國, 强兵, 그리고 ‘국가의 正體性에 대한 국민의 신뢰’, 이 세 가지를 말한다. 이 삼자의 관계에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공자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은 다른 것은 없어도 되지만 이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중요성은 아니다. 세 가지 모두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 얻기가 가장 어렵고 유지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즉, 부국을 이룩하고 강병을 양성하는 것보다도 국민의 신뢰를 얻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여야 공자의 말은 현실의 세계에서 타당성을 가진다.

국민의 신뢰를 얻고 이를 유지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보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page 273

2020. 4. 15. 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위험할 정도로 무너진 사실이 확인되었다.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일기의 앞 부분에서 이렇게 적은 바가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마치 공자가 말한 순서(즉 富國의 포기 그 다음에 安保의 포기라는 순서)를 그대로 지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 소감은 지금의 정부가 집권한 후에 한 여러 조치가 그 동안의 경제 기조와 안보체계를 차례 차례 허물어뜨리는 것을 보고 받은 느낌이었다, 이 번 총선이 끝나고 나니 공자가 말한 세 가지 중의 마지막의 것 즉,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국민의 신뢰마져 허물어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2020. 5. 1.)

 

page 311

팔순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때때로 느낀다. 느꼈다가도 곧 잊고 말지만. 아쉬움도 물론 있다. 범인으로서 어찌 노년의 달관을 감히 흉내낼 수 있으랴만은 그러면서도 공자의 천상탄(川上嘆)이 때때로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page 376

나는 지난 7. 15.자 페이스북에 올린 논어 읽기에서 「며칠 전 홍콩의 시민 100만명의 대규모 시위 모습을 보면서 대륙 당국의 후속조치가 걱정되었다 인권의 개념과 이해가 서구와는 다르다고 대륙의 당국 스스로 공언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인권 존중의 도(道)가 어찌 동서와 고금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쓴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지금, 그 때의 걱정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듯안 느낌이 엄습한다. 그것은 전체주의(全體主義) 때문이다.

나는 역시 지난 7. 7 자 페이스북의 논어 읽기에서 「이 시대의 천명(天命)은 무엇일까? 우선 전체주의(全體主義)로의 흐름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염원하는 개명(開明)된 인류의 공통된 바람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독재를 그 수단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천명은 ‘전체주의와 독재’를 거부하는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재와 필연적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전체주의적 세계관은 이 시대의 천명이 아님이 분명하다.」라고 쓴 일이 있었다.

이 시대의 흐름은 분명 전체주의는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는 역류(逆流)라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또한 그 역류의 높이와 세기, 시간의 길고 짧음이 매우 다양함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극동(極東)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이 역류가 홍콩에서 어떤 결과를 일으킬 것인지, 그 파장이 얼마나 길 것인지 이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을 덮치고 있는 이 흐름이 순류(順流)인지 역류(逆流)인지를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과거에 걸어온 길을 보고, 그가 일상 편안히 여기는 것을 살펴보면, 그가 어디에 숨겠는가.”

이 말에 따라 대륙의 역사와 행적을 회고하면 대륙의 흐름의 방향을 거의 그려볼 수 있다. 영국의 제국주의(帝國主義)가 멀리 극동까지 실어온 자본주의(資本主義)에서 피어난, 자유민주주의의 향기로운 등불은, 또는 악(惡)의 꽃은, 어찌 될 것인가?

 

page 379

잘못을 저질러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하나(如之何), 어떻게 하나?” 하면서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피고, 간절히 물어서, 난국의 돌파를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합리적 의문을 던지는 자세가 없이 책임의 소재를 남에게 돌리기나 하면서 오히려 여전히 멋대로 행동하는 태도를 보인다.

공자도 이런 상황을 보았던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라고 말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page 425

우리는 이웃을 편안하게 해주고 나아가 세상을 편안하게 해줄 어진 사람이 없음을 통탄해 마지않는다.

왜 그런 사람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좋은 자리에 자기보다 앞서 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붙잡아 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러니 어디서 어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 여기서 본다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뜻이 같으면서도 올바른 사람을, 키워주고 그를 앞에 가도록 밀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어줄 대상인 그 사람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무구비어일인(無求備於一人)< 논어 18-10> 하여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바른 사람을 밀어주는 그런 사람의 그런 노력은 어느덧 그 사람을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 맨 앞으로 떠밀려 가게 한다.

 

page 428

예컨대 공산주의는 빈곤의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북한 주민의 빈곤을 보라)를 부정(否定)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 중 이른바 상지(上知)와 하우(下愚)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과 믿음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 바뀔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일시적인 전술뿐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내세우는 상지와 하우의 사람들에게 공산주의가 빈곤의 해결책이 결코 아님을 아무리 계몽하고 설득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효과를 기대하려면 이른바 가장 어리석은 사람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중간에 있는 보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들에게 설득과 계몽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동정과 낭만에 젖어 좌파로 기울은 사람들에게 특히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공자의 이런 말을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집행하는 사람들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집권하면 생각과 믿음이 바뀌지 않을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들을 바꿔보려고 쓸데없이 애쓰는 대신에 이들을 집단수용소에 넣거나 해외도피를 시켜 아예 철저히 이탈시켜왔기 때문이다.

 

page 447

『자고자(自瞽者) 즉,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나 자외자(自聵者) 즉, 스스로 귀를 막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사람은 남을 속여 말하기를 “나는 지혜롭고 유능하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패망(敗亡)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나는 이 말을 이 책에서 우연히 발견했지만 그 순간에는 과연 그 말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이유는 요즈음 횡행하는 정치가들의 황당한 언행(言行) 때문에 나름 적지 않은 시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고자(自瞽者)나 자외자(自聵者) 가운데 패망하지 않은 자는 없었는가? 책장을 덮고 누운 채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짧은 지식과 소견으로 반추하여 보니 망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과연 모두 패망하였다. 문제는 패망에 이르는 시간에 장단(長短)의 차이가 있으니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버텨내야만 한다.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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