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기연수원’ 3년여 투쟁, 현재 진행형  
  •  이계홍
  •  승인 2019.09.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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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고 원장, ‘매몰 일기 재발굴 및 대토’ 제안… 100% 사회 환원 약속
지난 2016년 9월 철거 수순을 밟으며, 일기 및 건물 훼손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연수원 모습.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거두절미하고 초중고 학생들의 일기 120만여 권을 포크레인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면 경위야 어떻든 옳은 일일까. 

학문적ᐧ문화재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를 떠나 고사리 손에서부터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100여만 명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쓰고,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기록을 토지구획정리, 도시개발사업이란 이름으로 밀어붙였다면 온당할까. 

일기란 개인사인 동시에 시대사이고 사회사다. 그것이 집적되면 역사가 된다. 이런 한 시대의 귀중품을 도시개발이란 편의주의로, 혹은 상호 이해가 엇갈린다고 한꺼번에 진흙구덩이 속에 쓸어 넣어버렸다면 수긍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현재 사랑의 일기연수원 터 모습. 대토와 보상을 요구하는 연수원 관계자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세종시 토지구획정리 현장에서 일어났다. 

물론 행복도시 미래 성장동력인 세종테크밸리 조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옹호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선 사랑의일기 연수원 측이 사심이 개입된 무리한 보상 요구를 하며, ‘일기 보존’이란 본질을 훼손했다는 인식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보존 가치성을 따져볼 만한 시설과 일기 유물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면, 그 과정에도 분명한 문제가 있다 할 수 있다. 한편으론 2000여 년 전 진시황제 34년(BC 213년) 있었던 분서갱유에 비견할 만큼 몰지각하고 반문명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철거 논쟁이 뜨거웠던 지난 2016년 9월 그 후 흘러간 3년. 본지는 현재 진행형인 이 문제를 2차례에 걸쳐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사랑의 일기연수원' 3년여 투쟁, 왜

하. 소송 직면한 LH 등 관계기관, 현재 입장은

#. 일기 120만여 권, 왜 수집하고 소장했나?   

사랑의 일기연수원에 따르면 보관된 일기는 120만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는 많이 훼손돼 재수집 절차를 밟고 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세종시 금남면 석교리 141-1 옛 금석초 빈 교실에 전국에서 모인 사랑의 일기 120만권이 비치돼 있었다고 한다. 1990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초·중·고교 6000여 학교에서 모은 일기책이다.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ᐧ이사장 고진광)가 2003년 폐교된 금석초에 사랑의 일기연수원을 차렸고, 여기서 ‘사랑의 일기쓰기’ 보급운동을 펼쳐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스님, 서정주 시인 등이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서신과 친필 휘호도 있었다고 한다. 

사랑의 일기연수원은 금석초 폐교 사실을 안 고진광 연수원장이 당시 연기군교육지원청과 교섭해 마련했다. 빈 교실을 이용해 전국의 학생들을 모아 일기쓰기 보급 캠페인을 벌이고, 문인들과 함께 ‘안네의 일기’ 등 일기체로 구성된 세계적 명작을 감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학생들에게 일기쓰기 운동을 보급하면서 규칙적인 생활과 논리적 사고, 문장력 기르기와 창의력 키우기, 미래 꿈을 계획하는 자기 관리 교육을 펼쳐왔다. 

많은 학생들이 쓰기·말하기 교육을 습득한 것은 물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배웠다며 학교를 찾는 일도 많았다. 금석초가 한때 학생들의 답사 코스로도 널리 알려진 배경이다. 

#. 세종시 탄생과 함께 수용된 ‘금석초’, 뒤바뀐 운명 

그런데 세종시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금석초도 LH에 수용되기에 이른다. 지번도 세종시 금남면 남세종로 98번지로 바뀌었다. 아파트 단지 조성을 위해 새 번지수를 부여받았다. 

LH는 세종시교육청으로부터 금석초를 불하받았고, 관련 절차에 따라 사랑의 일기연수원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고진광 원장은 사랑의 일기 책을 보관, 전시할 대안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대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상호간 의견 대립이 시작됐다.  

#. LH, 컨테이너 빼고 ‘건설 대집행’ 

현재 사랑의 일기연수원 터는 도로와 아파트 공사에 한창이다.
현재 사랑의 일기연수원 터는 도로와 아파트 공사에 한창이다.

LH는 2016년 9월 28일 사랑의 일기 본부가 있는 컨테이너(약 330㎡) 부지만 남기고 1만 4876㎡(4500평) 학교 부지 매립을 시작했다. 

과거 충남도교육청과 LH간 맺은 용지매매계약서와 지장물 보상합의서상 사랑의 일기연수원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 입장 차가 확연한 사이, 학교 기물은 물론 사랑의 일기 120만권도 훼손 상황을 맞이했다. 지금 옛 금석초 자리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와 기반시설 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 고 원장, “120만권의 일기책, 2016년 철거 날벼락”

고진광 원장은 3년여 기나긴 투쟁의 선봉에 서고 있다.
고진광 원장은 3년여 기나긴 투쟁의 선봉에 서고 있다.

고진광 원장은 현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기 분화구처럼 내려앉은 컨테이너 자리가 당시 금석초 바닥과 똑같습니다. 지금 3m 정도 흙으로 주변을 돋아버리니 저지대가 되었지요. 지난 여름 장마 때는 완전 침수되어서 그나마 보관하고 있던 일기책 등 1만여 점이 수몰되었지요. 이중 삼중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120만권의 일기책은 동서고금을 통해 없는 자료라고도 했다. 그래서 이 소중한 자료들을 유네스코 일기문화 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을 세우고 등록 준비를 하다가 2016년 ‘철거 날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LH가 연수원을 철거하면서 포크레인과 브르도저, 사다리차, 용달차 등 116대를 동원하고, 용역업체 직원 등을 앞세워 전투를 치르듯 철거를 집행했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애초부터 무저항 비폭력으로 나갔기 때문에 맞서 싸울 의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덤비지 않은 사람을 더 위협적으로 밀어붙이고 철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맞서 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 아닙니까.”

이때 25톤 트럭 25대 분량의 기록물이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 LH에 “매몰된 일기 등 공동 발굴하자” 제안 

고 원장은 최근 LH를 다시 찾아 사랑의 일기를 공동 발굴하자고 제안했다. 매립된 토지에 상당 부분 매몰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부분 훼손되었지만, 건질 수 있는 것은 건지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재차 사랑의 일기연수원의 대토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 어느 장소든 상관없이 과거 부지 면적을 마련해주면, 사랑의 일기연수원을 다시 열어 뜻있는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학교가 강제 철거되면서 일기장과 서신, 명사들의 휘호 등 소중한 자료들이 땅속에 매몰됐습니다. 연수원이 철거된 이후에도 3년간 지속적으로 자료들을 찾아내 보관하고 있는데, 자료를 찾는 데 LH가 협조해주어야지요.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 대토 수용 시, ‘연수원 100%, 관계기관에 이양“ 약속 

“혹자가 제기하는 개인 욕심은 없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습니다. 백보, 천보 양보해서, 설사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귀중품을 유실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저는 대토가 마련되면 사랑의 일기쓰기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멸실된 일기공책들을 발굴해 전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연수원은 관계기관에 100% 이양하겠습니다. 그 뜻만 살리면 저는 제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이계홍 본지 주필.
이계홍 본지 주필.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리고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떠나 학생들의 소중한 일기책들이 고스란히 매몰되었다는 것은 반문명적이다.

 

어린 소년들이 본 세상의 추억들도 영원히 사라지는 안타까움도 있다. 개발에도 역사인식과 문화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