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거의 일 년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집안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 아파트에 모여사는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 재단이 후원하는 복지관에서 방과 후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며 6개월 정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저는 내가 과연 순수한 마음에 그들을 돕고 있는 것인 가 아니면 나보다 못한 환경의 그들을 동정하고 있는 것인가에 관한 괴리감이 상당히 컸었습니다. 그러한 합리화와 이러한 저러한 핑계로 제 생활에 치여 바쁘게 지내오던 중 한 달 반이라는 시간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고, 유럽사람들의 높은 행복지수를 느끼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러한 사회에 대한 이상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동정심이면 어떤가, 어떤 이유든 그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돌아볼 줄 안다는 것 부터가 사회의 변화의 시작이라고 느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모이다 보니,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했던 그 날 처럼 많은 학생들이 모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높은 지대에 다닥다닥 집들이 모여있다는 것은 방송에서나 봤을 뿐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정마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반대쪽은 북정마을에 있는 집을 몇 채는 모아도 그보다 클 것만 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빈부의 차’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일러를 틀면 금방 따뜻해지고, 베란다를 통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햇빛이 들어오는 집에서 편하고 따뜻하게 지냈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북정마을에 터를 잡고 계시는 분들은 그 추운 날씨에 손수 연탄으로 불을 지펴야만 따뜻한 겨울을 나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방송에서는 줄곧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보다 더 가까이에 그러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커피 한 두잔 값, 혹은 사치스러운 식사 한 끼 줄이면 충분히 제가 가능한 한계 내에서 많은 분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인데 저는 참 많은 걸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다른 학생분들과 함께 연탄을 나르면서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생각보다 무거운 연탄에 힘이 들었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 무거운 것들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직접 나르셨을 생각을 하니 그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은 제 생에 가장 잘한 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습니다.

또 기회가 있다면 어떤 방면에서든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도움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