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기와의 만남

 

19981022일 오후 2, 나는 김종필 국무총리를 대신하여 인간성 회복운동 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에서 주최하는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 만들기전국 어린이 한마당 잔치가 개최되는 세종문화회관에 참석했었다. 4000여 명의 어린이와 학부모, 선생님들이 대강당을 꽉 매운 가운데 본부석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 대회를 주관하는 김부성 회장님 외 각계 각종의 인사들과 자랑스러운 수상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큰 대회의 준비와 끝마무리가 모두 학부모와 일선 교사들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사회단체의 자생력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힘이 합쳐져 이렇게 뜻깊은 행사가 치러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 대회에 국무총리를 대리해서 참석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대회 하루 전인 1021, 인추협의 고진광 사무총장이 불쑥 국무조정실로 나를 찾아와서 역대 국무총리들이 모두 참석했었다면서, 김종필 국무총리께서도 참석하여 축사를 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해왔다. 이어서 그는 인추협의 역사와 사랑의 일가에 대한 의의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미 의전실을 통해 총리께 보고된 사항이지만 고진광씨의 말을 듣고 내가 다시 한번 말씀을 올렸는데, 김종필 총리꼐서는 보다 우선적인 국사가 있으니 국무조정실장이 내가 대리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때까지만 해도 인추협과 사랑의 일기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야 하는 입장인데, 꼭 참석해야 하는지 다소 짜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세종문화회관을 참석하기를 잘했고, 인추협이 하는 일이 참으로 뜻깊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날의 대회를 지켜보며 오랫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봉사하였지만 과연 공직 이외에 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의 일기장은 인추협에 의해 매년 무려 100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보내진다. 시혜 범위는 산간벽지나 낙도, 심지어 중국 동포 학생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고향 통영에 있는 모교 충렬초등학교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어서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의 어린 후배들에게 일기장을 보내주어 사랑의 마음을, 소박한 꿈을 거기에 담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충렬초등학교 전교생에게 사랑의 일기장을 선물키로 결심하고, 제작비에 해당하는 돈을 인추협 구좌로 송금했다. ‘사랑의 일기장을 받고 좋아할 어린 후배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내 마음은 무척 즐거웠다.

19991월 초 인추협은 호암아트홀에서 기록문화 전시를 가진 바 있다. 늘 일정이 바쁘지만 나름대로 사랑의 일기에 대한 애정이 생겨 시간을 내서 찾아갔다가 나는 또 한번 큰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는 전년도 200여 수상자들의 일기장 원본이 전시되어 있었고, 조선시대의 승정원 일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김구 선생의 애국일기를 비롯, 이곡의 동유기라든가 윤봉길 의사의 기사년 일기,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와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 서신 등등 많은 귀중본의 사본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그것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대하며 정부의 기록문화에 대한 현주소를 냉철히 짚어 보았다. 일개 사회단체에서도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전시를 이토록 짜임새 있게 주최하는 데 반해 우리 역대정부에서는 정부가 꼭 정리 보관 전시해야 하는 기록문화에 대하여 철저함이 결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추협의 기록문화 전시를 보고 난 후 나는 현정부의 기록문화 보전볍의 재정을 추진했다.

그후 인추협은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10월 중순에는 한반도를 하나로 세상을 품안에라는 기치 아래 ‘1999 사랑의 일기 어린이 힘주기 전국대회를 기최하게 되었다. 이때 대통령상 훈격상신을 해 왔으나 이를 실현시키지 못한 점과, 국무총리는 물론 나 자신도 그 대회에 참석할 수가 없어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실은 총리를 모시고 1021일 당일 대회장이었던 대전의 충무체육관으로 갈 일정은 잡아 놓았었는데 돌발사태가 발생하여 부득이 그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통하여 인추협과 그날 대전 충무체육관에 모였던 6000여 전국의 어린이들,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과 멀리 미국, 캐나다 중국에서까지 참석했던 동포 학생들에게 깊이 사과드린다.

그러나 인추협은 마침내 재정경제로부터 공익성 기부금 지정단체로 승인을 받게 되었고, 새천년을 맞은 후 첫 번째로 개최된 대회에서는 대통령상까지 시상되는 영광을 안았으니 경하해 마지않는다.

나는 인추협의 활동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제2 건국위원회 발족 당시 인추협의 실무 책임자인 고진광 사무총장을 만나 동참할 것을 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인추협은 인간성 회복운동을 전개함에 비정치성, 비영리성이 기본 원칙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으며, 원칙에 충실하는 자세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명을 받았다.

나는 마지막 공직이었던 국무조정실장 시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리고 여러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 내야 했지만 그중에서 사랑의 일기와 만나게 된 것을 가장 소중한 일로 꼽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사랑의 일기장보내기에 들어있는 인추협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운동이 숭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성 회복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그 범위는 너무나 넓고, 어찌 보면 추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인추협은 장래 이 나라의 일꾼이 될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여 자아성찰의 기회를 주고, 그로 인하여 아름다운 인성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추협에서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 사랑의 일기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공직자로서 눈코 뜰새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사랑의 일기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고향과 모교를 되찾게 해 주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모교의 어린 후배들에게 사랑의 일기장한 권씩을 선물한 후 나의 어린 후배들이 일기를 꾸준히 쓰며 올바르게 자라고, 그들이 바로 이 나라 내일의 일꾼, 이 나라 내일의 지도자로 성장할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학생 중에서 내가 보내 준 일기장에 일기를 슨 모교의 후배가 99년도에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었다. 이 또한 대견하고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로 사랑의 일기는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인추협의 사랑의 일기 기록문화 전시에 들러 수많은 귀중한 기록물을 살펴본 후 나는 내가 고시공부하던 시절에 쓴 일기장을 펼쳐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거기에는 내가 나중에 반드시 고향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행시 6회로 국가의 공복이 된 이래 30여 년 동안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어떤 오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떳떳하게 물러날 수 있게 되었지만 늘 바빴기 때문에 고향을 잊고 지냈다는 것이 새삼 부끄러웠다. 아니 잊고 지냈다기보다 공직 임무 수행상 고향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 청운의 뜻을 품고 공부하던 시절,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기를 썼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다. 인추협의 사랑의 일기전시 행사가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사랑의 일기는 북한 어린이들의 손에도 일기장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현재 추진중이라고 한다. 이 사안이 꼭 실현되어 사랑의 일기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시금석이 되기를 빌며 마지않는다.

끝으로 사랑의 일기를 만나게 해 준 고진광 사무총장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인추협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정해주, 그래 맞아! 정해주가 정해주었으니까

(서울 : 우리출판사, 2000214일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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